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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3-14 16:15
혹독한 신고식/윤효숙
 글쓴이 : 김학
조회 : 5,724  

혹독한 신고식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효숙




팔, 다리, 손가락, 발목, 온몸 구석구석의 뼈마디가 지끈지끈하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거기다 감기까지 들어와 극성을 부린다. 진통제와 종합감기약으로 지친 몸을 달래며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지만 모두 제왕절개수술로 낳아 산고의 고통을 몰랐다. 딸들의 양육이나 살림도, 직장 생활을 핑계로 남의 손에 맡겼다. 아기를 업고 다녔던 기억도 없다. 떼어놓고 다녔으니까…….


요즈음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쇼핑 다니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고 보니 난 보통 여자들이 보통으로 겪었던 문제들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손자 손녀 3명을 보았지만, 예전에 그랬듯이 또 남의 손을 빌려 산후조리를 해주었다. 물론 친정엄마로서 그 경비는 다 내가 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네 번째 손녀를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그런대로 잘 넘어갔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미국까지 가서 산후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이나 도우미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시어머니가 못 오신다며 울상을 짓는 딸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산후조리는 역시 친정엄마가 최고다. 그래서 딸을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할 수 없이 친정 엄마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산후조리는 처음이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두려울 때면 잘 감당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굳게 다짐했다. 두 번째 출산인지라 예정일보다 일찍 미국에 도착하여 살림을 시작했다. 식사와 청소, 더구나 큰손녀 돌보기까지, 3교대도 아닌 오전 7부터 자정까지 17시간의 중노동이었다. 교통사고 후 완치도 안 된 몸인데 병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나는 병이 나고 말았다. 한국사람 가는 곳에 산후도우미도 있게 마련인지 정보망을 통해 산후도우미를 구해 보려니 한 달에 삼백오십만 원정도가 든다는데 그나마 지금은 없다고 하였다. 그 돈이면 비행기 값 들이고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뻔하였다. 물론 친정엄마가 해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출산하러 간 3일간이 문제였다. 손녀와 둘이만 지내야 하는데 손녀가 나를 잘 따라주느냐가 문제였다. 다행히 손녀가 순해서 바로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다음 문제는 미국의 병원은 호텔처럼 빵이 나오니 내가 미역국과 밥과 반찬을 마련해서 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일을 하고 있으면 손녀는 저와 놀아주지 않는다고 엄마를 찾으며 울어 일을 할 수 없었다. 아기를 보면서 살림을 하는 엄마들의 어려움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 엄마들이 두 돌도 채 안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 작은 딸도 손자를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하여 마음 아팠던 일이 떠올랐다. 때마침 정부에서 세살 박이도 어린이집에서 무료로 돌보아주게 한 것은 잘 한 일이구나 싶었다. 어찌어찌하여 3일간은 무사히 넘어갔다. 사위가 학교에 가지 않을 땐 점심 한 끼는 간단한 메뉴로 해결해 주어 어려움 중에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열흘 전부터는 사위도 허리가 아프다며 도움을 주지 않아 모두 내 몫이 되니 나도 병이 나 버렸다. 결국 어렵게 수소문하여 며칠간 도우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딸이 산후 6주가 지나 조금씩 도움을 주어 형편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나 몸이 아픈 것은 여전하다. 큰손녀를 돌보아야 하니 산후조리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경우다. 한국에서 같으면 시댁이나 친정 중 큰 아이를 맡아 주는데 큰 아이도 같이 있으니 딸도 힘들고 나도 힘이 든다.


미국사람들은 아기를 낳고 바로 찬 것도 먹고, 샤워도 한다는데 유독 한국 사람들은 산후조리를 하는 바람에 미국을 찾아간 친정엄마들이 모두 병이 나서 돌아간다고 하였다. 여기는 친정엄마들이 할 수 있는 위안거리가 없어 밤에 사위가 컴퓨터에서 내려받은 영화를 보거나 성경읽기 정도가 고작이다. 처음 한 달은 며칠 지났는지 세어보다가, 지금은 얼마 남았는지 계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언제 또 딸의 산후조리를 해주겠는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딸이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산후조리를 해주고 싶다. 내 몸과 홀로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지금쯤 돌아가야겠지만 거의 연년생의 아이와 시달릴 딸을 생각하여 좀 더 머물 생각이다.


죽음의 길과 산고의 길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혼자 가야하는 외로운 길이다. 여기에 덧붙여 산후 조리도 이 세상 엄마들만이 겪어야 하는 힘든 길이다. 이곳 미국에서는 남편들에게 한 달간의 유급휴가를 주어 아내를 돌본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앞으로 그런 시대가 올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신고식’ 하면 영화에서 보았던 죄수가 감방에 들어올 때 첫날 하는 신고식이 떠오른다. 이제부터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신고하는 절차일 것이다. 대학생 신고식도 마찬가지로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통과의례다. 나 또한 한 어머니로서 보통 사람들이 다 겪는 산후조리라는 고통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는, 신고식도 아주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2012.3.12. 미국에서 큰 딸 산후조리 중에)